신화의 나라 한국
신화의 나라 한국
고조선 단군신화
머나먼 옛날, 하늘나라에 桓因이라는 임금이 여러 아들이 있었는데 桓雄이라는 아들을 세자로 삼았다. 환웅은 미모인데다 머리가 영리하여 다른 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따돌림을 받았다. 환웅은 외로웠다. 하루는 환웅이 혼자 하늘왕궁 한 모퉁이에서 하늘 아래로 내려다보는데 하늘 아래는 무질서한 세상이었다. 그는 내가 저기에 내려가 잘 다스려 하늘나라와 같이 질서 정연하고 풍요로운 나라로 만들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데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인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있는 곳을 보고 내가 저기에 가서 내 뜻을 이루리라 생각하였다. 그곳이 바로 조선이라는 곳이다. 하늘나라의 임금 환인은 왕세자 환웅의 고민을 잘 알고 있었다. 환인은 아들 환웅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환웅에게 부하 3000명을 데리고 하늘 아래로 내려가 그의 뜻을 이루어 보게끔 하였다. 환웅은 부하들을 데리고 경치 좋은 묘향산에 내려와 바람 비 구름을 주관하는 우두머리를 거느리고 인간을 다스리고 짐승들도 다스려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었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한 굴에 살았는데 인간이 되기를 원하여 환웅에게 빌었다. 환웅은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면서 굴에 들어가 이것을 먹으며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으로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그렇게 하겠다고 굴로 들어가서 지내는데 범은 그것을 먹고 백일을 지내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굴에서 나왔으나 곰은 백일을 지켜 사람으로 변신하였는데 여자의 몸으로 태여 났다. 그가 바로 熊女이다. 웅녀는 신단수 아래서 아기 배기를 기원하였다. 그녀가 가여워 환웅은 잠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여 그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바로 檀君王儉이다. 단군왕검은 평양을 도읍으로 하고 朝鮮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단군은 그 후에 阿斯達에 들어가 山神이 되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 1908세이다.
고구려 주몽신화
주몽(朱蒙)신화 이야기는 길다. 간략하여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옛날, 송화강(松花江) 유역에 부여(夫餘)라는 나라가 있었다. 부여왕 해루루는 늙어서도 자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해루루가 곤연이라는 연못가 바위 밑에 있는 아기를 데려다 금와(金蛙)라 이름을 지어주고 길렀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해루루왕은 늙어 죽고 금와가 왕위에 올랐다.
금와왕은 태백산(太白山) 남쪽에 있는 우발수라는 강가에서 고기를 잡다가 물의 神-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만났다. 유화는 하늘 나라에서 내려온 해모수(解慕漱)와 엃힌 신세 이야기를 하였다. 금와왕은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가엽시 여기어 대궐로 데려다 방에 두었다. 유화는 햇빛을 받아 잉태하여 알을 낳았다. 그 알에서 아기가 태여 났는데 그가 자라서 힘도 세고 활을 잘 쏘았다. 그때 부여에서는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불렀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주몽(朱蒙)이라 하였다.
금와왕은 아들 일곱이 있는데 그들은 주몽을 두려워하고 해하려 하였다. 주몽은 자기의 처지를 생각하고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였다. 그는 어머니의 도움으로 천리마 한 마리를 골라서 몇몇 사람과 함께 남쪽으로 먼 길을 떠났다. 그들은 천신만고하여 졸본(卒本)이라는 곳에 이르러 비류수(沸流水)가 흐르는 곳에 초막을 짓고 거처하였다. 그리고 高句麗라는 나라를 세웠다. 그때 그 부근에는 송양왕(松讓王)이 다스리는 비류국(沸流國)이 있었다. 주몽은 송양왕과 무예를 비겨 이겼다. 그리하여 비류국을 고구려에 합병 시켰다. 그리고 주몽은 19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국토를 넓혀 나갔다.
주몽이 부여국에 있을 때 禮氏 아내가 있었는데 주몽이 부여국을 떠날 때 그녀는 임신중이 였다. 그녀가 낳은 유리(類利)(유류-孺留)는 아버지가 七嶺七谷石上之松에 간직한 칼 토막을 찾아 가지고 아버지를 찾아 졸본에 이르러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칼 토막을 맞추어 보고 유리가 자기의 아들이라 확인하였다. 그리고 유리를 태자로 삼았다. 주몽은 나이 마흔에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태자 유리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동명성왕(東明聖王)이라는 시호를 드렸다.
백제 온조신화
백제 건국신화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많이 아려진 신화는 다음과 같다.
주몽이 졸본으로 피난 와서 고구려를 세우고 비류(沸流)와 온조(溫祚)라는 두 아들을 보았다. 그 후 부여를 떠나기 전에 본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 유리가 주몽을 찾아와 그를 태자로 삼았다. 그러자 비류가 온조에게 하는 말이 훗날 유리가 우리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니 여기를 떠나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몇몇 신하와 함께 남쪽으로 떠날 때 많은 백성들이 따라 나섰다.
그들이 한산(漢山)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보니 북쪽에는 한수, 동쪽에는 높은 산, 남쪽은 비옥한 평지, 서쪽은 넓은 바다였다. 신하들 하는 말이 이곳을 수도로 정하고 나라를 세우면 좋은 곳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비류는 바닷가 미추흘이라는 곳으로 가서 살았고 온조는 하남 위레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이름을 백제(百濟)라 하였다.
신라 박혁거세신화
서라벌은 땅이 기름지고 기후가 따뜻하여 살기 좋은 곳이다. 서라벌 동쪽마을 楊山은 알평(謁平)이 다스리고, 서쪽마을 大樹는 구례마(仇禮馬)가 다스리고, 남쪽마을 고허(古墟)는 蘇伐都利가 다스리고, 동남마을 珍支는 智伯虎가 다스리고, 동북마을 加利는 지타(只他)가 다스리고, 서북마을 고야(高耶)는 虎珍이 다스렸다. 이 여섯 마을의 우두머리는 하늘에서 내려온 神人들이다. 그들은 자주 알천에 모여서 마을 이야기를 하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군주가 나타나 천하를 다스리기를 바랐다.
어느 날 또 알천 냇가에 모여 회의를 하는데 양산 기슭에 서기가 나타났다. 그리고 하늘에서 흰구름이 내려오더니 하얀 말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향해 절을 하고 있었다. 우두머리들은 이상하게 여겨 그곳으로 가보니 백마 앞에는 큰 박처럼 생긴 알이 있었다. 이때 백마는 길게 울음을 하고 하늘로 올라갔다. 소벌도리가 그 알을 만져보니 아직도 온기가 있었다. 여섯 우두머리는 신기하게 여겨 그 알을 갈라보니 거기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그들은 아이를 동천이라는 샘에 가져가서 몸을 씻기니 아이 몸이 향기롭고 광채만발하였다. 그리고 해는 더욱 밝아지고 산새와 짐승들이 모여들어 춤을 추고 노래하였다. 소벌도리는 그 아이가 장래 훌륭한 임금이 되리라 생가하고 박에서 태여 났기에 성을 朴씨라 하고 이름은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혁거세(赫居世)라 하였다. 그가 13살 되는 해에 여섯 우두머리들은 그를 임금으로 추대하였다. 그가 바로 신라 시조 박혁거세이다.
고려 왕건신화
고려 왕건신화는 7대 시조의 이야기로 이루어 졌는데 선조들의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옛날에 송악산(松嶽山) 기슭에 작제건(作帝建)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장남 이름이 용건(龍建)이다. 용건은 이름을 융(隆)이라 고쳐 불렀다. 융은 미모에다 대장부다운 사나이이다. 융은 어느 날 밤에 꿈속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는데 그녀에게 마음이 사로 잡혔다. 그녀 역시 융의 미모에 한번에 반하였다. 두 사람은 장차 부부가 되기로 약속하고 융은 꿈에서 깨어 났다. 그 후 어느 날 융이 송악에서 영안성으로 가는 길에서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 여인이 꿈속에서 만난 그녀와 같았다. 융은 즉시 그 여인을 아내로 받아 드렸다. 그 여인이 꿈에서 만난 그녀와 같아서 그 여인을 몽부인(夢夫人)이라고 불렀다. 융과 몽부인은 송악산 기슭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남쪽 벌에 새 집을 짓고 이사하려 하였다. 이때 도선대사가 백두산에 올랐다가 곡령에 이르러 융의 새 집을 보고 하는 말이 ‘아까운 일이로다. 기장을 심을 곳에 어찌 삼(麻)을 심었는고’ 도선대사가 혼자 하는 말을 융이 멀리서 알아 듣고 즉시 달려가 그 뜻을 물었다. 융은 도선대사를 따라 송악산에 올랐다. 도선대사는 천문과 산수의 맥을 이야기 하더니 하는 말이 ‘이곳은 백두산의 水母와 木幹을 이어 받은 곳이니 명당자리임에 틀림없네. 그대는 水命과 물의 大數를 좇아서 육육 36간의 집을 지으면 내년에 틀림없이 성스러운 아들을 볼 것이니 아들 이름을 王建이라 지으면 천지의 대운이 따를 것이네’ 그리고 도선대사가 글을 써서 융에게 주었는데 겉봉에 “삼가 장래의 三韓을 통합할 大原君子에게 드리나이다”라고 썼다. 융은 도선대사의 말에 따라 집을 고쳐 짓고 이사하였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몽부인이 그 달에 잉태하여 이듬해에 남자 아기를 낳았다. 도선대사의 말에 따라 아들의 이름을 王建이라고 하였다. 이가 후에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고려 태조 왕건이다.
後記: 한국 선조 나라들의 神話는 또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것으로 끝을 맺기로 한다. 한국의 신화는 고조선의 건국에서부터 기타 후속 국가의 건국에 까지 다 신화에 휩싸여 있다. 그러니 한국은 신화의 나라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역사는 신화에 둘러싸인 신비한 존재이다. 그리고 어떤 신화는 황당하기 짝이 없다. 역사는 실존하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야 하는데 신비한 신화에 근거하여서는 안될 일이다. 한국의 역사를 사실에 근거하여 고조선과 후속 국가들의 건국과정을 설명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한국역사의 정체성이 보장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