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집-雜文集

역사를 소송하다

o a s i s 2011. 9. 6. 10:23

 

                                                      역사를 소송하다  

 

      모 신문*에 의하면 역사책에 실린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조상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그 후손이 조상에 대한 기록을 수정해달라는 청원을 하는가하면 항의도 하고 심지어는 작가에게 봉변을 주는 일이 버러진다고 한다. 어떤 후손들은 법원에 소송까지 거는 일도 있다고 한다.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실계보>라는 책에 태조 李成桂의 이복 형 李元桂가 부친 이자춘과 첩 사이에서 태어난 庶子라고 서술했는데 그 책의 著者가 이원계의 후손들의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후손들의 주장은 당시는 여러 正夫人을 두는 衆妻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李元桂는 서자가 아니고 장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朝鮮王朝實錄>에는 이원계가 이자춘의 서자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니 항의는 잘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란다.

      여기서 누가 누구의 후손인지도 모르는 형편에, 게다가 수백년 전 옛날 일인데 웬만하면 그대로 지날 수 있는데 하필 항의까지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종친회를 조직하여 족보를 이어가고 있으며 선조들의 명예를 아주 귀중하게 여기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이라는 책에 고려 2대 임금 혜종의 출생에 대한 민망스러운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왕건은 궁예의 명을 받아 금성(나주)을 정복하고 그곳의 호족 吳多憐의 딸과 결혼하였다. 왕건은 오씨와 동침은 하면서 그 출신이 높지 않아 오씨의 임신을 피하려고 그의 정액을 돗자리에 배설했은데 오씨가 돗자리에 묻은 정액을 손으로 넣어 임신했다고 한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의 이마에 돗자리 자국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후에 그가 고려 2대 임금이 되었는데 그가 바로 혜종이다. 그런데 오씨의 후손이 법원에 소송을 냈다고 한다. 과학적 진실이 아닌 허위 사실로 혜종의 어머니 장화왕후 오씨와 그 후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원은 "역사적 사실에 관해서는 망인이나 후손들에 대한 명에훼손이라고 불 수 없다"라고 원고 패소판결했다고 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법원에 소송까지 걸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정황은 윗 정황과 좀 다르다. 이 이야기는 어느 실록에 근거하였다 해도 왕건의 동침에서 오씨의 임신에 이르는 과정이 상식적으로 진실성이 의심된다. 그리고 혜종의 이마에 돗자리 자국이 임신 과정과의 연관성은 과학적 도리에 전여 맞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돗자리 자국이 정말 있는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 그러니 이런 일이 어느 실록에 있다고 해서 진실이라고 믿기 어렵다. 때문에 법원의 판결이 옳다고 보기 어렵다. 이미 올라온 소송을 판결할 필요가 있다면 법원은 응당히 과학적 근거 여부로 판결하여야 할 것이다. 그 책의 저자가 법적 책임은 없다 할지라도 그 사실이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은 응당이 지적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신화의 나라 한국>이라는 문장에서 건국에 관한 역사는 신화가 아닌 진실에 근거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반 역사에 관계된 이야기책도 진실에 근거하여야 할 것이다. 이야기거리로 이루어진 재미삼아 읽는 역사 이야기는 "外史" 또는 "이야기 ㅇㅇ사"라고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렇게 쓴 역사 이야기도 항의 받을 지도 모르지만.....

 

                                                       * 조선일보  2011.7.22-23  B4 1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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